광주의 오월을 걷자

광주 사적지(29개소)



제2호 분노의 방아쇠, 당겨지다
광주역 광장
광주 북구 무등로 235

 광주역 일대는 차량과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공간이며, 시위대의 중요한 이동로였다. 이는 전남대학교 학생들이 5월 14∼16일 도심으로 행진하고 귀교할 때 광주역 광장을 경유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5월 18일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사건이 발생한 이후 에도 학생들은 광주역 광장을 경유해 금남로로 가서 시민들에게 비극을 전했다.


 광주역은 외부와 연결된 주요 관문이라는 점에서 전략적 요충지였다. 광주역은 계엄군의 만행이 다른 지역으로 전파될 수 있는 출구였고, 반대로 계엄군이 광주로 들어오는 입구들 가운데 하나였다. 계엄군이 광주로 이동했던 경로는 세 가지였다. 첫째 항공기를 이용해 광주 공항으로 들어오는 것, 둘째 기차를 이용해 광주역과 송정역으로 들어오는 것, 셋째 차량을 이용해 호남 고속도로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계엄군에게 광주역은 반드시 점령해야 하는 장소였다.


 광주역의 경계를 맡은 계엄군은 제3공수여단 제16대대였다. 20일 저녁 무등경기장에서 출발한 차량 시위대의 일부가 광주역을 경유해 금남로로 진행하자, 곧바로 제16대대가 배치되었다. 제3공수여단 제12대대와 제15대대가 지원하여 시위대를 진압하려 했으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작전처는 지프와 트럭에 실탄을 싣고 광주역으로 이송하려 했다. 이들 차량이 전남대학교를 나서자 시위대가 이동을 방해했다. 계엄군은 이들에게 발포하는 등 진로를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공식 문서에는 이에 관한 희생자가 언급되고 있지 않으나, 병원 기록 등에는 사망자와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던 것으로 남아 있다.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것은 21일 새벽 2시 20분경부터 제3공수여단이 전남대학교로 철수를 완료하기까지였다.


 제3공수여단이 철수한 뒤 광주역 일대는 처참한 광경을 드러냈다. 시민들은 광주역광장에서 시신 2구를 발견하고, 손수레에 실어 금남로를 따라 전남도청으로 나아갔다.손수레에 실린 2구의 시신은 허봉(26세, 이발사, 자상)과 김재화(26세, 회사원, 총상)이었다. 시신을 본 시민들은 계엄군의 만행에 격분했다. 계엄군은 자신들이 그런 것이 아니고, 간첩의 소행이라고 둘러댔다. 돌이켜보면, 이 사건은 21일 오후 금남로와 전남도청 일대에서 대규모 학살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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