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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오월을걷자

오월길

오월인권길

다양한 유형별 5·18사적지를 통해 내가 원하는 답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 의미 : 민주화의 염원이 숭고한 희생정신과 만나는 길
  • 총거리 : 약 21.5km
  • 소요시간 : 약 5시간 20분
  • 코스
1도청과 5·18민주광장<사적 5-1호>
가자, 도청으로! 최후의 결사항전지
당시 항쟁본부이자 27일 최후의 격전지로 많은 시민군이 산화한 곳이다. 이곳에 주둔하고 있던 계엄군은 21일 시민들을 향한 무차별 집단발포 후 광주시민들의 결사항전에 쫓겨 광주시 외각으로 철수하였다. 이후 전남도청은 항쟁지도부가 활동하였고 시민수습대책위가 대책을 논의하는 등 시민 공동체의 중심지였다. 옛 전남도청 부지는 10여년의 건립기간을 통해 현재 아시아문화전당으로 재탄생하였다. 아시아문화전당은 기획과 창작시설을 갖춘 문화 창조원과 문화 콘텐츠를 디지털 보관하고 활용하는 문화정보원, 아시아 공연 예술을 선보이는 예술극장,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놀이와 체험형 시설인 어린이문화원, 5·18민주화운동의 가치를 공유하는 민주평화교류원, 이렇게 5개 원으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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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남동성당<사적 25호>
광주 민주인사들, 수습대책을 논의하다
1980년 5월 22일 당시 김성용 주임신부를 비롯하여 광주의 민주인사들이 모여 시민들의 희생을 막기 위한 수습대책 8개항을 최종적으로 정리한 장소다. 또한 1980년 7월부터 구속자 석방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월요미사가 진행됐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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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전남대학교병원<사적 9호>
5·18민주화운동의 야전병원
부상당한 시민들을 헌신적으로 치료하고 돌본 5‧18민주화운동의 야전병원이었다. 당시 긴박했던 상황에서도 복도까지 밀려든 부상자, 치명상을 입고 신음하는 중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의사와 간호사들의 혼신의 노력이 있었고, 자발적인 시민 헌혈 행렬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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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선대학교<사적 12호>
계엄군의 주둔과 시민들의 고난
조선대학교 학생들은 전남대학교 학생들과 더불어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으며, 항쟁기간에 시민군 지도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1980년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시내 곳곳에서 계엄군에게 마구 끌려온 수많은 시민들과 학생들이 체육관에 수용되어 잔혹한 폭행과 고문을 당한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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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배고픈다리 일대<사적 13호>
시민군의 모범적인 지역방위 현장
여기 있던 배고픈다리(현 홍림교) 일대는 5·18민주화운동이 치열하던 1980년 5월 21일, 시민군이 시내 중심가에서 계엄군을 물리친 후 모범적으로 지역 방위를 했던 곳이다. 조선대학교 뒷산을 통해 퇴각한 계엄군이 다시 시내로 진출할 것에 대비, 그날 해질 무렵부터 이 지역 예비군 등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어 시민군을 편성하고, 이 다리를 중심으로 방어망을 구축하여 물샐틈없는 경계를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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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남마을 인근 양민 학살지<사적 14호>
누구도 광주를 빠져 나가지 못해!
1980년 5월 21일 광주 시내에서 퇴각하여 주남마을에 주둔한 계엄군들이 광주-화순간 도로를 지나가는 미니버스, 대형버스, 앰블런스 등에 무차별 공격을 자행한 곳이다. 5월 23일에는 승객 18명을 실은 미니버스에 무차별 사격을 가해 탑승자 가운데 단 3명만이 살아남았다. 계엄군은 이들 3명 중 부상당한 청년 2명을 주남마을 뒷산으로 끌고 가 살해하였다. 그 후 이곳에 묻혀 있던 시신은 항쟁이 끝난 뒤 주민의 신고로 발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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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광목간 양민 학살지<사적 15호>
계엄군의 화풀이, 젊은 청년들의 죽음
계엄군 간 오인사격으로 인한 화풀이로 공수부대원들이 무고한 양민 학살을 자행한 곳이다. 계엄군은 집집마다 난입하여 총격을 가하였으며, 이로 인해 권근립, 임병철, 김승후 등 다수의 주민이 살해 당했다. 또한 항쟁 기간 중 이곳을 지나가던 민간차량에까지 무차별 사격을 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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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광주기독병원<사적 10호>
5·18부상자를 헌신적으로 치료하다
이 병원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부상당한 시민들을 헌신적으로 치료한 민주의료현장이다. 병원에 있던 의료진은 일시에 밀려든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침식을 잊었으며 수혈할 피가 부족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수많은 시민들이 헌혈에 동참했다. 당시 긴박한 상황에서 광주시민은 남녀노소 구분없이 하나가 되어 서로 돕고 위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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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구 광주적십자병원<사적 11호>
뜨거운 시민정신이 빛나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부상당한 시민들을 헌신적으로 치료하고 돌본 곳이다. 당시 긴박했던 상황에서도 의료진은 부상자들의 생명을 돌보고 살리기 위해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활동을 펼쳤다. 피가 부족하다는 것이 알려지자 시민뿐만 아니라 인근 유흥업소 종업원들까지 헌혈에 참여, 뜨거운 시민 정신을 발휘했다. 항쟁 후에도 계속 부상자들을 따뜻하게 치료해 주는 등 적십자정신을 빛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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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광주공원<사적 20호>
시민들의 대치본부 역할
시민들이 계엄군의 학살에 맞서 시민군을 편성하고 사격훈련을 했다. 광주공원 내 시민회관을 본부로 삼아 시내를 순찰하고 치안을 담당했다. 5월 27일 계엄군과 치열한 접전이 있었던 곳으로, 시민들의 대치본부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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