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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오월을걷자

오월길

오월인권길

다양한 유형별 5·18사적지를 통해 내가 원하는 답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 의미 : 민주인권을 외친 열사의 혼을 광장에서 만나는 길
  • 총거리 : 약 11.1km
  • 소요시간 : 약 3시간
  • 코스
1광주공원 광장<사적 20호>
시민군 무기를 들다
이곳은 5·18민주화운동 때 시민들이 계엄군의 학살에 맞서 시민군을 편성하고 훈련했던 곳이다.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에서 자행된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많은 사상자가 나자, 오후 4시경 시민들은 자위 수단으로 인근 시군 지역에서 예비군용 총과 탄약 등 무기를 가져와 시민군을 편성하고 사격술 훈련을 실시했다. 5월 27일 계엄군이 진압해 올 때 이곳에서도 시민군과 치열한 접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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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양동시장<사적 19호>
대동정신을 발휘했던 나눔의 공간
5·18민주화운동 당시 양동시장 상인들은 자발적으로 돈을 모금하여 시민군과 학생들에게 빵과 우유를 나누어 주고 밥(주먹밥)을 지어 주었다. 양동시장과 대인시장 상인들은 조를 나누어 밥을 짓고, 양동이에 물을 받아다 목마른 이에게 주고, 함께 시위에 참여하는 등 시민이 하나가 되는 대동정신을 앞장서서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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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농성광장 격전지<사적 16호>
죽음의 행진
1980년 5월 22일 계엄군이 국군광주병원 부근에 통제선을 설치하고 인근 주택가에 무차별 총격을 가해 무고한 시민이 희생당한 곳이다. 또한, 5월 26일 새벽, 계엄군이 시내로 다시 진입하려 하자 시민수습대책위원들이 구 도청에서 농성광장까지 ‘죽음의 행진’을 하여 계엄군 장갑차의 시내 진입을 저지한 저항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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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국군광주병원<사적 23호>
부상환자를 치료하고 수용 조사하였던 곳
이곳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사에 연행돼 심문하는 과정에서 고문과 폭행으로 부상을 당한 시민들이 끌려와 치료를 받았던 곳이다. 이곳에까지 계엄사 수사관들이 파견되어 시민들은 치료 과정에서도 취조를 당하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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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5보안부대 옛터<사적 26호>
민주인사들을 연행·고문한 장소
이곳은 전남지역 군 정보부대였던 505보안부대가 자리 잡고 있었던 곳이다. 신군부는 이곳에 합동수사단을 설치하고 이 지역 민주인사와 학생운동 지도부 및 시민군 등을 체포해 지하 감옥에 감금하고 고문 수사를 자행하였다. 또한 5·18민주화운동 진압작전의 실질적인 지휘본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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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상무대 옛터<사적 17호>
영창에서는 고문의 신음소리, 법원에서는 사형선고
상무대(육군 전투병과교육사령부)가 있었던 자리로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주요 지휘관 회의가 이곳에서 자주 열렸고, 시민수습위원들이 수차례 군 수뇌부와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항쟁 뒤에는 시민 3천여 명이 붙잡혀와 헌병대 영창에서 상상을 뛰어 넘는 무자비한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 현재 군사법정 건물 및 헌병대 영창 건물은 상무지구 택지개발에 따라 인근 5·18 자유공원에 옮겨져 복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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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8자유공원
5·18 자유를 위한 숭고한 정신을 체험하다
1980년 5월을 재현한 전시 시설로 5·18민주화운동 참여자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당시 법정과 영창, 중대내무반 등 7개 장소를 복원·재현하였다. 실물 모형, 수감 상황 미니어처 등 각종 소품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체험할 수 있다. 또한 공원 입구에는 들불야학 7열사의 기념비가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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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18기념공원
그날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다
슬픔의 역사와 어두운 질곡에 빠져 있던 그 시절, 민주화운동을 위해 희생한 광주의 모든 이들을 기념하기 위해 상무대 자리가 5·18기념공원으로 조성되었다. 5·18기념재단과 5·18기념문화센터가 위치해 있고 광장에는 광주인권상 수상자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기념공원에는 5·18현황주작과 추모승화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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