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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오월을걷자

오월길

오월민중길

다양한 유형별 5·18사적지를 통해 내가 원하는 답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 의미 : 오월여성들의 저항의 몸짓과 공동체 정신을 발견하는 길
  • 총거리 : 약 18km
  • 소요시간 : 약 4시간 10분
  • 코스
1녹두서점 옛터<사적 8호>
당시 광주 유일의 여성단체인 송백회를 중심으로 여성활동이 이루어지던 곳
송백회(松柏會)는 1978년,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지향하는 각종 활동 및 민주인사들의 옥바라지를 위해 결성된 여성들의 모임이었다. 1980년 5월 항쟁 당시 이들은 녹두서점을 거점으로 화염병 제작, 투사회보 발간, 취사, 항의, 수의 제작 및 검은 리본 배포 등의 활동을 벌였다. 23일 밤, YWCA로 거점을 옮기기 전까지 여성들의 활동이 주로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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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광주 MBC 옛터<사적 7호>
광주의 상황을 외면한 MBC에 화염병 투척
임영희 등은 광주의 상황을 외면한 채 오락프로그램이나 내보내는 방송국에 19일 오후 3시 경 화염병을 투척, 20일 밤 다른 여성들과 함께 재차 화염병을 던졌다. 군부의 검열을 받던 언론이 항쟁의 열기는 물론이고 계엄군의 과잉 진압마저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방송국이 화염병만으로 쉽게 불에 타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 일각에서는 방송국이 시민들에게 활용될 것을 두려워 한 계엄군이 일부러 방송국을 소각했을 것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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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광주 YWCA 옛터<사적 6호>
여성들의 조직적 움직임
23일 밤 송백회는 녹두서점에서 YWCA 건물로 활동장소를 옮기고, 궐기 대기조, 가두 방송조, 대자보조, 인쇄조로 나누어 활동하였다. 21일까지 들불야학에서 제작한 유인물을 배포하다가 22일부터 투사회보를 중심으로 궐기대회 물품제작 및 모금운동을 전개하였다. 광주 YWCA 옛터는 항쟁 당시 송백회 회원, 여성노동자, 여고생, 여대생 등 20여 명의 여성들이 함께했던 곳이다. 27일 새벽 3시 경 YWCA에 남아있던 20여 명의 여성들은 계엄군 진군 직전까지 남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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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구 상무관<사적 5-3호>
임시 희생자 주검 안치소
희생자들의 주검을 임시 안치했던 곳으로 집단 발포와 무자비한 진압에 희생된 주검이 이곳에 안치되었다. 이 곳에서 여성들은 도청에 있는 시신들의 신분을 확인하고, 상무관으로 보내져 온 시신들을 수습하거나 관리하는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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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8민주광장<사적 5-2호>
진정한 성평등 광장
5·18 민주광장은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적인 장소로 할머니, 가정주부, 직장 여성, 여학생이 가두행진과 궐기대회에 동참했던 곳이기도 하다. 23일 밤 시민궐기대회 여성사회자 이현주(당시 21세) 씨가 여성사회를 보고 홍희윤이 여성 대표로 성명서를 낭독했던 곳이며 24일부터는 정현애, 정유아, 이행자가 궐기대회 준비과정에서 집행부가 되어 준비를 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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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도청과 5·18민주광장<사적 5-1호>
가자 도청으로!
5·18 민주화운동의 본부가 있던 곳으로 최후의 항전을 벌이다 수많은 시민군이 이 곳에서 산화한 곳이다. 도청에서는 30여 명의 여성이 22일부터 26일까지 대민업무(행불자 접수, 출입증 발급), 무기회수 및 관리, 부상자 수송 및 간호, 시신 수습, 취사활동 등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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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구 광주적십자병원<사적 11호>
여고생, 매춘여성까지도 현혈에 동참
부상당한 시민과 시민군을 헌신적으로 치료하고 돌본 곳으로 시민 뿐 아니라 인근 매매춘 여성, 여고생까지도 헌혈에 참여해 진정한 시민정신이 발휘되었던 곳이다. 여성들은 적십자병원 앞에서 헌혈 인파와 부상당한 환자들을 돌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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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오월어머니집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어머니들의 집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군부 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어머니들이 중심이 되어 시대의 아픔을 같이 하고 시대를 넘어선 진정한 광주여성운동 담론의 장이 될 ‘오월여성회’를 만들었다(2000년). 이후 2006년 5월 8일, ‘오월어머니집’을 개관하였고, 2014년 5월 8일, 양림동의 현 위치에 새롭게 터를 잡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오월어머니집에서는 오월 정신 계승 사업 및 오월 여성의 이야기 등 책자 발간 및 국내외 교류 사업 등을 하고 있으며, 해마다 5월이면 80년 5월의 숨은 주역을 찾아 ‘오월어머니상’을 시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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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소심당(素心堂) 조아라 기념관
조아라 선생의 사랑·정의·평화·봉사정신을 기리는 공간
'광주의 어머니'라 불리는 조아라 선생(1912~2003)의 기독교운동·여성운동과 민주화운동 및 여성 복지 향상을 통한 사랑·정의·평화·봉사정신을 계승·선양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조아라 선생은 항쟁 당시 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하며 구속자와 부상자들을 돌보았으며 여성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었던 인물이다. 조아라 기념관은 조아라 선생이 윤락여성, 빈민 여성의 자립을 위한 지원활동의 근거지였던 계명학사를 리모델링하여 2015년 9월에 개관하였다. 조아라 선생이 2003년 7월 소천할 때까지 10여 년 간 머물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 곳에서는 고인을 기리는 사진, 그림 및 고인이 생전에 사용하던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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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광주기독병원<사적 10호>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부상당한 시민들을 헌신적으로 치료한 민주 의료현장
병원에 있던 의료진은 일시에 밀려든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침식을 잊었으며 수혈할 피가 부족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수많은 시민들, 어린 초등학생들까지 자발적으로 헌혈에 동참해 민주시민의 뜨거운 열정을 보였다. 당시 긴박한 상황에서 광주시민은 남녀노소 구분없이 한 덩어리가 되어 서로 돕고 위로하였다. 이 병원은 항쟁 뒤에도 항쟁 부상자들을 가족처럼 치료하고 돌봄으로써 기독교 정신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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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광주여성재단
지역과 공감하는 양성 평등 정책 개발의 산실
광주여성재단은 시민의 성평등 의식을 높이고 ‘더불어 행복한 사회 실현’이라는 공동체적 가치를 실현하며, 지역 여성의 네트워크 구축·교류·협력을 통하여 여성의 능력과 역량을 효과적으로 발휘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 및 지역여성 정책 개발 활동을 펼치고 있다. 80년 5월 항쟁 당시 여성들의 강인한 투쟁과 헌신의 흔적을 송백회의 활동을 통해 찾아볼 수 있었다면, 오늘날 여성과 지역사회가 함께 행복하기 위한 길을 고민하고 공유하는 여성재단의 활동 속에서 나눔을 통해 이룩했던 광주의 대동정신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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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양동시장<사적 19호>
주먹밥으로 나눔 정신·공동체 정신 수호
5·18 민주화운동 당시 여성들은 시민군들에게 주먹밥과 생필품을 제공하는 등, 모든 시민이 하나가 되게 하는 대동정신을 앞장서 발휘하였다. 20일 양동시장 노점상과 동네 아주머니들은 시위대에 빵, 라면, 신발, 김밥, 수건 등을 보급하고 여학생들은 시민궐기를 호소하였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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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농성광장 격전지<사적 16호>
‘죽음의 행진’의 현장
1980년 5월 22일, 광주 시내에서 쫓겨 온 계엄군이 통제선을 설치하여 농성광장의 시민군과 대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계엄군은 인근 주택가에 무차별 총격을 가했고, 농성광장 인근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었다. 시민수습대책위원들은 이 곳 사선을 넘나들며 상무대에 있던 계엄사를 방문해 중재와 협상을 시도했다. 5월 26일 아침, 계엄군이 시내로 다시 진입하려 하자 조아라 선생을 비롯한 시민수습위원들은 이를 막기 위해 농성광장에 맨몸으로 누워 저항하는 '죽음의 행진'을 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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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구 505보안부대<사적 26호>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여성들
505 지하 보안대에 끌려간 시민들은 몽둥이로 많이 맞았다고 증언한다. 여성의 경우 더욱 그러했다. 폭행은 물론 성추행이 만연했다. “시민 선동 및 시위대에게 음식과 음료수를 제공했으니 넌 5·18 폭도다”라며 고문하였고, 쓰러져 의식 잃으면 국군통합병원으로 보내 감시하였다고 전해진다. 시민들의 고문 후유증과 오월 트라우마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 현재 진행형 5·18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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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상무대 옛터<사적 17호>
국가폭력에 두 번 상처받은 여성들
27일 동이 틀 무렵부터 정현애 등 30명의 여성(김현주, 정현순, 조아라, 이애신, 김선옥, 김경림(당시 여고 2년), 박미숙(당시 중학 3년 휴학)과 시체 염하는 활동을 한 유흥업소 여성과 박경희, 박영순, 정유아 등)이 구속되었다. 정현애는 100일 만에 풀려났으며 차명숙은 1980년 9월 15일 15년의 선고를 받고 광주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1981년 석방되었다. 상무대에서는 계엄군의 만행을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갖은 고문과 가혹행위가 자행되었다. 구속된 여성들을 대낮의 땡볕 아래 영창 마당에 벌 세워 쓰러지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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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광산유치장 옛터
민주화운동 당시 100여 명이 구류되었던 곳
항쟁 당시 100여 명의 여성이 광산유치장에 구류되었다. 5월 27일 이후 항쟁 수습 과정에서 신군부는 시민들의 구금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이들을 행방불명자로 처리하였다. 그러나 5월 31일 광산유치장에 20여 명의 여성이 수감되었을 때, 이미 4명(유소영, 전춘심, 홍금숙, 차명숙)의 여성이 수감되어 있었다고 한다. 광산유치장에 구금되었던 여성들은 좁은 공간에 약 20명씩 수용되었으며, 여성 위생 용품을 공급받지 못하는 등의 불합리한 인권 유린이 자행되었다고 증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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