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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오월을걷자

오월길

오월민중길

다양한 유형별 5·18사적지를 통해 내가 원하는 답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 의미 : 민주주의를 향한 차량 행진을 따라 걷는 길
  • 총거리 : 약 3.7km
  • 소요시간 : 약 56분
  • 코스
1무등경기장 정문<사적18호>
1980년 5월 20일 오후 6시
택시기사들은 시내로 흩어져 동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후 6시 경, 무등경기장 앞에는 2백 여 대가 넘는 차량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대형버스를 앞세워 경적을 울리고 전조등을 비추며 도청으로 향한 행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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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유동삼거리
1980년 5월 20일 오후 6시 40분
유동삼거리를 지날 때 차량들은 경적을 울리며 시민들을 응원했다. 유동삼거리는 도청에 운집한 시위대가 공수부대에 쫓겨 온 곳이기도 하며, 시민궐기대회를 위한 차량 가두방송이 진행된 5.18민주화운동 도심부의 끝자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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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금남로<사적4호>
1980년 5월 20일 오후 7시~8시
금남로는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에 맞서 5·18민주화운동 기간 중 연일 격렬하게 저항했던 항쟁의 거리다. 유동삼거리를 지난 시위대는 도청 앞 광장으로 가기 위해 금남로에 진입하였다. 버스와 택시 등 각종 차량과 시위대가 운집하여 금남로 일대를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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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8민주광장<사적5-2호>
1980년 5월 20일 오후 8시
80년 5월 20일 저녁, 사흘째 계속된 공수부대의 유혈진압에 맞서 마침내 광주 시민 10만여 명은 버스와 택시 200여 대를 앞세우고 ‘아리랑’을 부르며 금남로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8시 10분, 시위대와 공수부대는 시위 차량을 가운데에 둔 채 대치하였다. 이 때, 공수부대 대원과 경찰들이 차량을 우회하여 시위대를 공격하려 하였고, 버스는 이를 막기 위해 경찰 저지선으로 돌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 4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언론이 사건의 자세한 내막을 감춘 채 왜곡 보도하자, 시위대의 분노는 폭발하여 21시 50분경 광주MBC 건물 방화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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