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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오월을걷자

오월길

오월남도길

다양한 유형별 5·18사적지를 통해 내가 원하는 답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 의미 : 고립되었던 광주의 참상을 전하러 갔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
  • 코스
함평 무안 목포
1함평
광주의 시위대와 함께 차량시위 전개
함평군 민주화운동은 80년 5월 18일 이후 고속버스·트럭 등 10여 대에 분승한 광주의 시위대가 5월 21일 함평읍에 도착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는데 함평읍을 중심으로 세 갈래로 이루어졌다. 먼저 학교면 지역은 목포 방면으로 진출하려는 차량 시위대가 면소재지로 들어와 학교역 광장과 학다리초등학교 운동장을 돌면서 차량시위를 전개하였으며 군부대가 사거리에 주둔, 목포방면에서 올라오는 차량을 향해 기관총으로 발포를 한 지역이며, 함평읍 지역은 장날이던 5월 22일 지역 내 유지와 함평읍장 등이 중심이 되어 오전 11시부터 300~400여 명의 군민들이 함평읍 공원에 모여 안전을 도모하려는 목적으로 궐기대회가 열리는 등 ‘광주사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유인물이 배포되기도 하였다. 한편 신광·대동면 지역은 자체 시위대를 구성하여 차량 시위를 전개하고 신광파출소 등에 들어가기도 하는 등 5월 21일 하루동안 시위를 전개하였으며, 항쟁기간 동안 함평지역 내에서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는 없으나 타지로 나간 시위대 중 일부가 다치거나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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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무안
5월 21일부터 본격적 항쟁 시작
극도의 불안과 분노로 지내던 80년 5월 18일 이후, 광주에서 내려온 차량 시위대가 이 지역에 들이닥친 5월 21일부터 무안 지역에서는 본격적인 항쟁이 시작되었다. 광주에서 계엄군의 잔혹한 만행의 소식을 듣고 분개하고 있던 군민들은 즉시 그들과 합세하여 군내를 돌며 시위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나주, 영암, 영광 인근 지역을 순회하며 투쟁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무안 지역은 목포로 들어가는 관문이면서 인근 신안 도서 지역과 함평, 영광을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수많은 시위 차량이 통과하면서 차량 시위를 전개하였던 곳이다. 특히 버스터미널은 날마다 수많은 주민들이 모여 차량 시위 대원들에게 음료수와 주먹밥 등을 제공하면서 이들을 격려하였으며 계엄군의 만행을 규탄하고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는 시위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며, 무안 지역에서는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가했던 군민 중 16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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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목포
광주 시민군과 함께 대규모 항쟁의 신호탄이 솟아 오르다
목포에서도 목포역 광장은 5·18민주화운동의 심장부였다. 80년 5월에 들어서 군사독재의 연장을 반대하고 민주화를 열망하는 목포지역 학생과 시민들은 연일 시위를 벌였는데 이 시위는 5월 17일 비상계엄 확대 선포 때까지 계속되었다. 5월 21일 목포에 도착한 광주 시민군과 함께 대규모 항쟁의 신호탄이 올랐던 이곳은 5월 28일 새벽 1시까지 진행된 목포 5·18민주화운동 중심지였다. 5·18민주화운동 전 기간 동안 수만명 목포 시민들은 목포역 광장에 운집하여 “계엄령 철페”, “전두환 처단”, “김대중 석방” 등을 외치며 수차례의 궐기대회, 횃불시위 등을 하였다. 특히 이곳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항쟁지도부, 상황실을 설치하는 등 목포지역의 대규모적이고 조직적인 항쟁을 준비하고 펼쳐낸 근거지라 할 수 있다. 이후에도 5·18민주화운동 정신계승을 위한 각종 행사는 물론 목포 시민들의 조국의 민주화와 평화적 통일을 열망하는 의지를 모아내는 상징적 공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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