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오월을 걷자

오월길 테마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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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부엌, 시장
작성일 : 2021-12-28     조회 : 229

광주의 부엌, 시장 첨부파일 : 03-01.JPG


시장은 여행자의 순례지 중 하나다. 상품을 사고파는 곳인 동시에 삶을 엿볼 수 있는 그곳에서 누군가는 낡은 가게와 케케묵은 노인을 볼 것이고

또 누군가는 풍파를 이겨온 뚝심과 각별한 온정을 발견할 것이다.

빛고을에도 아름다운 전통시장들이 많다. 양동시장, 말바우시장, 남광주시장, 대인시장 등등…….

그중 큰 사람(大人)들과 어질게 사는 이들(良洞)이 있는 양동시장과 대인시장을 촘촘히 순례하며 그 속에 녹아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Writer 정원선 에세이스트 Photographer 이규열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식당

유행에 가장 민감한 산업은 Fashion()이고, 그다음이 Food(음식)란 말이 있다. 음식점 하면 우리는 유구한 대형식당을 떠올리겠으나, 밥집은 대개 영세하여 오늘도 개업과 폐업을 반복하면서 치열한 각개전투를 치른다. 이 전장의 생존율은 8% 정도다(음식점 폐업률 92%, 2019 국세청 통계). 음식점은 들꽃처럼 도처에서 피어나지만, 뿌리를 채 내리기도 전에 가뭇없이 쓸려가 버린다. 설치비, 임대료, 재료비, 인건비, 수수료, 홍보비……. 점주들은 음식보다 비용을 고민하는 일이 많고, 식당 역시 손님을 잃기도 전에 자리를 잃는 경우(gentrification)가 잦다. 손이 큰 주인장이 요리를 막 퍼주는 식당, 시키지도 않은 접시가 상에 가득 깔리는 인심 좋은 밥집이란 TV 속에서만 존재하거나 유니콘처럼 가공된 신화에 가깝다. 인정하자, 세상은 변했다. 우리는 모두 야박하기 그지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 점주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런데 종종 풍문이 떠돈다.

 

어딘가에 이상한 식당이 남아있다고. 재료비도 못 되는 헐값만 받고, 본품보다 덤을 더 많이 주며, 심지어 뷔페처럼 얼마든지 더 먹어도 된다고. 믿기 힘든 이야기다. 누구는 흙 파서 장사해? 거기만 시공이 뒤틀린 것도 아니고. 설마. 빛고을 시장통의 허름한 가게들 가운데 유니콘이 있다. 일단 대인예술시장으로 가자. 교통과 물류의 부설로 크게 번성했지만 연이은 이전에 떠밀리며 고전하다가 최근 갤러리와 공연, 토요 야시장으로 활기가 되살아나고 있는 대인시장의 국밥 거리로!

 

대인시장 국밥거리는 순대국밥 특화상가다. 허술한 길목들 사이에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허연 연기를 뿜어내는 좁은 모퉁이가 있다. 나주식당과 영광식당이 그 거리의 터줏대감이다. 메뉴는 평범하다. 식사꺼리로 국수(6천원)와 국밥(7천원)이 있고, 안주꺼리로 순대모듬(13천원), 머리고기(15천원), 종합(순대+머리고기, 15천원) 등이 있다. 술도 판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무난한 국밥집이다. 시장 안에 있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점이 없다. 두 곳이 다 그렇다. 일단 자리에 앉으면 주인이 묻는다. 국밥 드려? 아님 국수? 둘 중에 고르면 된다. 메뉴판엔 이런저런 게 많지만 그거면 주문이 끝난다.

국밥(또는 국수)은 제일 늦게 나온다. 반찬이 먼저 깔리고, 잠시 후 미확인 비행물체 같은 커다란 접시가 식탁에 착륙한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광주리만한 대접에는 순대, 내장, 머릿고기가 삐져나올 정도로 촘촘히 쌓여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2~3인분은 되어 보이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이 메뉴는 덤, 다시 말해 서비스다. 2인 이상에만 주어지는 특혜도 아니다. 혼자 와서 먹어도 그보다는 작지만 넉넉한 접시가 나온다. 양이 너무 많아 다 먹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데 하물며, 남은 건 포장도 해가란다.

 






양동시장 복개상가 영창식당

광주뿐 아니라 호남에서 가장 큰 장이라 불리는 양동시장은 금남로를 사이에 두고 대인시장과 반대편에 자리한다. 오래전 광주천이 지금과 달리 구불구불 흘렀을 때 다리 아래 백사장에 펼친 난장에서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곳, 전국에 유통되는 홍어의 90%가 여기에서 나오며, 그 밖에도 농산, 축산, 수산, 건어물, 닭전길(옛 이름 닭전머리, 오리와 닭을 도매로 취급하며 즉석에서 잡아준다), 옷가게, 가구점, 잡화까지 굽이굽이 볼거리 먹거리 구경거리가 수두룩하다. 웬만한 마트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고 넓다. 시장 복개상가의 2층 끄트머리에는 40년 가까이 영업해온 영창식당이 있다. 예전엔 삼겹살, 주물럭도 팔았지만, 지금은 무조건 불고기 백반”(18천원, 2인 이상 가능)이다. 주문을 마치면 소불고기에 당면, 푸성귀가 육수에 푹 잠긴 전골냄비가 버너에 놓이고, 뒤이어 쌈과 반찬이 빽빽한 9첩 쟁반이 딸려 나온다. 일반적인 불고깃집이라 해도 좋겠으나, 그렇다면 개점 전부터 손님이 매일같이 줄을 서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반전은 이윽고 냄비가 끓으면서부터다. 불고기와 국물을 살짝 퍼서 밥 한술 위에 올리고 반찬 한 가지를 되는대로 집어 함께 먹으면 비밀이 풀린다. 너무 쉬워서 어이가 없을 정도다. 주위에는 비슷한 반응이 속출한다. “어따!”, “흐미~”, “워쩔껴영창식당의 특별한 점은 간에 있다. 달지도 짜지도 느끼하지도 않은 불고기, 방금 무쳐 내왔는지 신선하기 그지없는 나물무침, 산뜻한 겉절이, 양념이 절묘하고 씹는 맛이 살아있는 오징어무침, 달마다 바뀌는 제철 찬과 쌈 채소가 그야말로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본 메뉴인 불고기를 뺀다 해도 훌륭한 백반집일 것이고, 곁 반찬을 되물려도 탁월한 불백집일 것이다.

정식집의 찬과 전문점의 불고기를 두루 갖추고도 이 가격인 것은 시장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백년큰장에는 그 밖에도 노무현 대통령이 뚝배기를 깨끗이 비웠던 국밥집 하나분식이 있으며, 닭전머리 초입에는 즉석에서 잡은 산닭으로 치킨을 튀겨주는 이른바 전국 3대 치킨통닭집들이 밤늦게까지 불을 밝힌다. 한결같이 양이 푸지고 맛도 그만이다. 


식당의 앨리스들

다시 대인시장으로 가자. 국밥 거리와 대각선으로 마주 보는 골목에 조붓한 밥집이 하나 있다. 간판에는 가게명이 작고 숫자가 크게 쓰여 있어 이채롭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는 금방 알 수 있다. “백반 1,000원 해뜨는식당적힌 그대로, 이 집은 백반을 천원에 제공한다. 형편이나 시간, 조건에 따라 제한을 두는 것도 아니다.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차별 없이 밥과 국, 3 찬을 차려낸다. 고 김선자 씨는 사업 실패와 사기 피해를 당한 후 2010년 작심하고 식당을 열었다. 나만큼, 아니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밥 한 끼 정도는 맘껏 먹게 해주자는 심정이었다. 가격을 천원으로 정한 것은 아예 돈을 받지 않으면 손님이 되레 눈치를 살피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밥 한 그릇에 국 한 사발, 나물과 생선(때로는 고기), 김치가 곁들어지는 이 소박한 밥상은 매일 메뉴가 바뀌며, 얼마든지 리필된다. 해뜨는식당은 한 사람의 후의에서 출발했지만, 곧 수많은 이들의 호응을 받았다.

 

상인은 식재료를 제공했고, 주민은 십시일반 모금을 도왔다. 당신이 뜻하지 않은 대장암 투병으로 식당을 쉬는 동안 이웃들은 더불어 마음을 졸이며 쾌유를 기원하고 앞다퉈 정성을 모았다. 그러나 운명은 모진 것이어서 김선자 씨는 결국 세상을 떠났다. 유언은 하나였다. “식당을 계속해 달라.” 전국에서 조문이 쏟아지고 모두가 안타까워했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러나 휴업은 오래가지 않았다. 고인의 셋째 딸 김윤경 씨가 신변을 정리하고 영업을 재개한 것이다. 그는 만만찮은 당신의 유지를 따랐고, 그 이상 씩씩하게 변화도 시도했다. 뜻을 함께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모아 해뜨는식당이 더 많은 손님을 포용하도록 만든 것이다. 개점시간인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상황에 따라 두서너 명의 찬모들이 윤경 씨를 도와 손님을 맞는다. 천 원짜리 식당이지만 응대는 살갑기 그지없어서 거기 앉아 있자면 수시로 이런 소리를 듣게 된다. “밥 좀 더 하시죠.”, “동태국 좀 많이 퍼드려.”, “커피도 드시고 가세요.”

광주광역시청은 2021521일 광주시민의날 기념식에서 사회봉사부문 시민대상 수상자로 고 김선자 씨와 딸 김윤경 씨를 선정했다.



그때 그 사람들

1980518일은 일요일이었고, 석가탄신일이었다. 광주 사람들은 그날이 유독 더웠던 날이라고 입을 모은다. 평화로워야 했을 휴일에 계엄군이 들이닥쳤고, 이유 없이 사람들을 때리고 잡아갔다. 연행한 이들의 겉옷을 보란 듯이 벗겨선 속옷만 남긴 채로 대로변에서 뺑뺑이를 돌렸고, 항의하던 시민들에게 총검을 겨누고 묻지마 폭행을 일삼았다. 이후 광주는 고립된 채 폭행, 납치, 고문, 살육에 휩싸였다. 순순히 쿠데타를 받아들이지 않았단 죄로, 시범케이스로 본때를 보이듯 무참히 또 악랄하게.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도청 이곳저곳에서 계엄군과 시민들이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시체를 쌓아가는 연옥의 며칠 동안, 지역민들이 그 공방을 구경만 했던 건 아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여자들은 동네마다 쌀을 추렴해 골목에 솥을 걸고 밥을 해서, 소금간을 쳐 주먹밥을 만들었다. 김만 말아서 맨 김밥을 싸기도 했다. 지나가는 시민군 차량이 보이면 세워 밥을 올려주었다. 양동시장과 대인시장은 하나됨(大同)을 앞장서 구현한 장터로 이름난 곳이기도 하다. 노점상들이 돈을 모으고, 슈퍼는 음료수와 주전부리를 내놓고, 싸전은 계란을 건네고, 청과상은 딸기를 풀고, 다른 이들은 주먹밥을 쥐었다. 너나없이 물이라도 날랐다.

 

차를 타고 시위하던 학생들이 나 물 좀 주시오! 우리 물 좀 주시오! 하길래 바가지에 물을 떠다 주니 꿀떡꿀떡 묵어! 그리고 그 이튿날은 어머님들 배가 고파 죽겄소 그래. 우리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노점상들에게 천 원씩 걷어 빵하고 우유하고 사서 주었는데 차들이 너무 많아! 감당이 안 돼! (중략) 모은 돈으로 쌀을 한 가마니 사서 (중략) 겨우 밥을 쪄서 사과 박스에 부어 리어카에 싣고 양동상회에서 몰래 주먹밥을 만들었어. 밥은 뜨겁지, 마음은 급하지 맨밥에 소금만 뿌려 대강 쌌어. 그렇게 해서 차에다 얹어주면 언제 갔는지도 모르게 사라지고 또 다른 차가 오고 그랬어.

물도 없고 반찬도 없는데 학생들이 환장하고 먹었어.”(양동시장 이영애 씨 , 양동시장 어머니들의 주먹밥 이야기를 아시나요?, 이로운넷 윤미혜 기자, 20210517) “공수부대들이 몽둥이 갖고 학생들을 쫓아가믄 학생들이 우르르 시장으로 막 들어와. 그라믄 빨리 들어오라고 가게 셔터 문을 열어주고 그 사람들 가믄 내주고. 그때는 내 자식 같고 이녁 동생 같고 그랑께 참말로 협조해 주고 싶어도 무서우니께 그러도 못하고 있었제. 그러다가 인자 밥도 못 먹고 배고프니께 슈퍼에서 뭐 사다가 도로까지 가서 주고, 사과도 주고, 저짝 안에 골목에서 주먹밥도 해서 갖다 주고 그랬제. 주먹밥 지어서 김에다 싸서 띵겨 주믄, 학생들이 도로에서 데모하다 받아서 먹고 그랬어.”(양동시장 김동심씨, 내 자식 같고 이녁 동생 같고, 광주, 여성_그녀들의 가슴에 묻어둔 5·18 이야기69, 후마니타스, 2012)“그때는 아무런 정신도 없었어. 우리가 이렇게라도 안하믄 학생들, 시민들 다 굶어죽겄다는 생각뿐이었제. 글고 니 자식, 내 자식 구분 두지 않고 모두가 내 자식이라 여긴께 아낄 것이 없더랑께. 그때는 누가 살아남는다는 보장을 못 했어.

모두가 죽을 줄 알고 하니까 똘똘 뭉칠 수 있었제.”(대인시장 곽근례씨, 모두가 내 자식이라 여긴께 아낄 것이 없더랑께, 5·18기념재단 소식지 주먹밥40, 2013 05)“전경들은 다 갖다 먹이잖아요. 물도 주고, 도시락도 주고. 근디 우리 학생들은 구호 외치면서 물을 못 먹어서 그냥 쓰러지고 배가 고파서 굶주리잖아요. 그때 엄청나게 더웠어요.

5월이어도 그때같이 더울 때가 없었어요. 그래서 어르신들이 아야, 학생들이 굶고 있단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양동시장도 한다는데, 대인시장이 이러면 되겠느냐?” 그랬죠.

그래갖고 장사하는 엄마들한테 가서 5천원도 걷고, 3천원 걷고, 2천원도 걷고 그랬어요. 1만원을 주신 분도 있고…….

기름도 얻어오고, 방앗간에 밥 쪄오고, 가마솥에다가 소금하고 참기름하고 섞어 갖고 막 주물러서 박스에 담아서 실어 보냈어요. 또 물통에다가 수돗물 받아서 실어주고.” (대인시장 하문순씨, 아야, 학생들이 굶고 있단다, 광주, 여성_ 그녀들의 가슴에 묻어둔 5·18 이야기69, 후마니타스, 2012)

 


그때 거기와 지금 여기

대인시장 벽화에 그려진 청과 노점상이 바로 하문순씨다.

그는 항쟁 당시 주먹밥을 만드는 족족 손수레에 실어 시민군에게 건넸다. 지금도 그 수레에 딸 이름을 따서 지은 상호(‘진희상회’)를 달고 장터를 누빈다. 한 자리에 붙어 있지 않은 그를 손님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기어코 찾아내 과일을 산다. 재미나게도, 하씨는 뭔가를 살 때마다 덤을 준다.

복숭아를 사면 토마토, 포도를 사면 거봉, 식으로 조금씩 다른 것을. 그리고선 슬쩍 덧붙인다. “나눠 드셔.” 41년 전 그 불볕 내리쬐던 10일 동안, 싸우는 이들이 도청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스물아홉 곳에 달하는 사적지가 방증하듯이, 현장은 공원, 종교시설, 고등학교, 병원, 터미널, 실개천, 외곽 마을까지 사실상 광주 전역이었다. 청년들만 맞선 것도 아니다. 중학생, 구두닦이, 회사원, 여고생, 넝마주이, 자영업자, 술집종업원, 종교인, 날품팔이……. 거기에 귀천이나 남녀노소 구별은 없었다. 젊은이들은 전위에 섰고 나이든 이들은 뒤를 받쳤다. 남성들이 총을 메고 여자들은 쌀가마를 업었다. 도청이 주먹을 담당했다면 시장은 밥을 도맡았다. 너나없이 제 가진 바를 아끼지 않고 훌훌 내주었다. 서로가 서로 없이 온전할 수 없었다. 광주는 그때 오롯이 하나였다. 지금도, 광주의 시장은 여전히 하나이려고 한다. 함께 온 이들에게도 혼자 온 사람에게도 술 한 잔 곁들일 공짜 안주를 푸지게 내주는 선의, 특별한 외식(불고기는 반세기 전부터 한국인의 가장 친근한 외식 메뉴다)을 해야 할 때도 최대한 헐값에 제철 음식까지 골고루 먹이겠다는 고집, 가진 게 없는 이들이 자존심마저 잃지 않도록 책정한 가격에 담겨진 혜안, 홀로 배부르기보다 나눠먹을 수 있도록 한 줌 더 건네는 손길의 윤리……. 필자가 이곳을 유니콘이라 부르는 이유다. 반면 궁금해진다. 인심이 여전하고 맛이 오래간다는 광주만의 습속은 무엇 때문일까. 상인의 계산된 호의로만 볼 수 없는 지순한 환대는 어디에서 연유했을까. 감히 짐작해 보자면, 그건 잊을 수 없어서, 잊지 못해서가 아닐까. 무엇을? 공동체의 기억을. 가족과 마을과 싸움과 죽음과 그 모든 것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난 뒤에도, 그 사실을 결코 지워버리지 않겠다는 콤콤하고 비릿한 결심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 기억이 여전히 상처뿐이라 해도, 한순간 나는 당신이었고 당신이 나였다는 그 사실은 잊히지 않아 그들은 오늘도 타인에게 허다한 말 대신 새로 만든 음식 한 접시를 잠자코 내미는 게 아닐는지.

 

연대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너른 폭의 우정이며, 또한 어쩔 수 없이 사랑일 것이다. 자신을 넘어서려는 안간힘이 낳는 사랑. 시장은 우리가 상품을 사고파는 곳이지만 동시에 삶을 엿보는 장소이기도 하다. 같은 시장에서도 누군가는 낡은 가게와 케케묵은 노인을 볼 것이고, 또 누군가는 풍파를 이겨온 뚝심과 각별한 온정을 발견할 것이다. 어떤 순간들이 모여 대물림해줄 역사가 될까. 빛고을 시장에는 큰 사람(大人)들과 어질게 사는 이들(良洞)이 있었다. 당신의 주먹과 나의 밥, 주먹밥이 있다. 항쟁의 야전식당은 여전하다.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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