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오월을 걷자

광주 사적지(29개소)



제22호 도로를 점유하고 시민을 탄압한 계엄군
광주교도소
광주 북구 동문대로 261

 광주교도소는 북구 문흥동 소재했으며, 담양, 곡성, 여수, 순천 방면의 관문에 위치했다. 고속도로와 국도의 중간지대에 광주교도소가 있었고, 동광주 인터체인지와 인접해 있어 교통의 요충지였다. 따라서 계엄령 확대되자 즉각 제31사단 제96년대 제2대대 병력이 광주교도소 경비를 지원했다.


 전남대학교에 주둔했던 제3공수여단은 5월 21일 오후 5시 30분경 광주교도소로 이동했다. 제3공수여단은 제31사단 병력을 대신하여 광주교도소와 그 일대를 경계하는 임무를 받았다. 제3공수여단은 24일 오전까지 이곳에서 작전을 수행하다가 ‘상무충정작전’을 위해 제20사단 제62연대에게 임무를 교대하고, 광주공항으로 이동했다.
광주교도소 일대에서의 민간인 희생은 바로 제3공수여단이 주둔하던 시기에 주로 발생했다. 광주의 다른 외곽지대와 같이 인근 지역에 거주하던 주민들 혹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은 광주교도소 앞을 지날 수밖에 없었고, 계엄군의 공격을 받았다.


 계엄군은 광주교도소보다 도심 안쪽에도 진지를 구축했는데, 이들도 오고 가는 차량과 시민을 공격했다. 계엄군은 광주교도소 일대에서 자행된 학살을 ‘교도소 습격’에 대한 반격이라고 호도했다. 이들 가운데 시민군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맞지만, 교도소를 습격하기 위해 그곳에 왔다는 것은 입증할 수 없는 허구였다. 그들은 단지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려던 시민군일 따름이었다. 제3공수여단이 주둔했던 며칠 동안에 희생자들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던 것은 현지 상황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맹목적인 군사작전을 전개했기 때문이었다. 제3공수여단의 이러한 행위들로 인해 광주교도소와 그 일대는 오랫동안 암매장지로 의심을 받았다. 실제로 5월 31일 광주교도소 울타리에서 8구의 시신이 발굴되었다. 광주교도소는 2015년 10월 북구 삼각동으로 이전했으며, 2017년에는 옛 광주교도소에서 암매장 시신을 발굴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위치




주변 사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