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오월을 걷자

광주 사적지(29개소)



제21호 시민들에게 겨눈 총부리
5·18 최초발포지
광주 동구 중앙로 282

 시민의 항거는 금남로와 충장로 등 도심에서 뿐만 아니라 광주 전역의 주요 장소들에서 일어났다. 계엄군은 시민의 집결과 항거를 선제적으로 차단하고 공포심을 조성하기 위해 장갑차와 M16 등으로 무장한 채 도심 이곳저곳을 순찰했다. 그러다가 5월 19일 계엄군이 최초로 발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오후 4시 50분경 제11공수여단 제63대대 작전장교(대위)가 이끌던 장갑차가 계림동 광주고등학교와 계림파출소 사이에서 시위대의 공격을 받았다. 시민들은 광주고등학교 방향으로 이동하는 장갑차를 포위하여 진행을 방해했다. 당황한 장갑차 운전병은 가로수를 추돌했고, 앞바퀴 구동축이 보도난간에 부딪히면서 시동이 멈췄다. 그러자 시민들에게 감시경을 파손당한 장갑차는 진퇴양난의 상태가 되었다.


 계엄군은 장갑차를 탈출하려 했으나, 일부만 성공하고 나머지는 다시 장갑차로 들어갔다. 시민들이 장갑차를 압박하자 위기감을 느낀 계엄군이 발포했다. 처음에는 공포탄을 쏘았으나, 다음에는 실제 사격을 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대학교 부속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영찬이 손과 대퇴부에 3발의 총상을 당했다. 김영찬은 공중보건의 정은택과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인근 외과병원에서 응급처지를 받고 전남대학교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장갑차는 실탄 발포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도망쳤는데, 제11공수여단은 이 사건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은폐했다. 계엄사와 보안대는 발포사건을 유언비어로 규정하고, 관련자에 대한 조사를 시도했다. 그래서 5·18민중항쟁에서 발생한 최초의 발포는 공식화되지 않았고, 한동안 시민들의 전언으로 회자되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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