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오월을 걷자

광주 사적지(29개소)



제11호 빛나는 공동체 정신
옛 광주적십자병원
광주 동구 천변우로 415

 광주적십자병원은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이었다. 그래서 항쟁 초반부터 부상을 당한 환자들의 방문이 쇄도했다. 5월 18일 금남로에서 계엄군의 폭력으로 부상을 당했던 장애인 김영철이 광주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되었던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국군광주병원으로 후송되었던 그는 5월 19일 새벽 3시경 사망했는데, 광주에서 발생한 첫 희생자였다.


 광주적십자병원은 계엄군의 발걸음이 잦은 병원이었다. 계엄군은 때로는 도망친 시위자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때로는 치료를 받기 위해 이 병원을 찾았다. 광주적십자병원은 종합병원이기는 하지만, 규모가 크지 않았고 의료인도 적었다. 따라서 부상자들이 갑자기 후송되어오자 일순간에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불가피하게 부상이 심각한 환자들은 전남대학교 병원이나 광주기독병원으로 전원을 해야 했다. 영안실도 턱없이 부족하여 병원 뒤 마당에 많은 시신들이 임시로 안치되어 있었다.


 의료인들은 산부인과 등에서 새우잠을 자며 환자를 돌보았다. 부상자들을 돌볼 인력이 크게 부족했는데, 시민들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헤쳐 나갔다. 시민들은 부상자의 간호에서 의료인의 먹을 것까지 챙겼고, 시신을 처리하는 일도 도와주었다.


 의료인들은 원활한 환자 이송을 위해 시민들에게 의사 가운을 제공했다. 의사들이 현장에서 활약했다는 증언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적십자병원에서도 의료품 부족이 고민거리였는데, 시민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겼으며, 병원 앞에는 헌혈 행렬이 길게 형성되었다. 그러나 계엄군은 사상자를 호송하는 적십자 차량에도 집중사격을 가하여 부상자가 발생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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