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오월을 걷자

광주 사적지(29개소)



제5-4호 역사적 결의가 모인 공간
광주YMCA
광주 동구 문화전당로 38(금남로 1가39)

 광주YMCA는 최흥종 목사의 주도로 1920년 7월 29일 창립되었다. 1928년에 충장로 5가에 최초의 회관을 건립했으며, 1954년에 금남로 1가 현 부지에 회관을 신축하여 이전했다. YMCA 회관의 특징은 원통형 지붕을 만들고, 내부에 매우 넓은 강당을 두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보유하고 있어서 일찍부터 이곳에서는 다양한 행사와 집회가 이루어졌다.


 금남로에 인접한 YMCA 회관은 ‘민족ㆍ민주화성회’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5·18민중항쟁의 초반 국면에는 경찰과 군인이 이 일대를 중심으로 경비를 서거나 폭력적으로 시위대를 진압했다. 어떤 시민들은 계엄군의 폭력을 피해 YMCA 내부로 도피하기도 했다. 


 5월 26일 오후 2시경 민주인사들이 YMCA에 집결했다. 이들은 김성용 신부를 김수환 추기경에게 보내 광주에서 전개되고 있는 실상을 전달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추기경이 대통령을 면담하여 광주에서의 학살을 중단 시켜주기를 희망했다. 임무를 받은 김성용 신부는 오후 4시경 광주를 벗어나 상경했다.


 그날 밤 계엄군의 재진입에 맞서 도청을 사수하기로 한 시민들이 YMCA에서 대기했다. 이들은 적게는 70여명, 많게는 200여명이었다고 기억되고 있다. 도청으로 들어간 이들은 27일 밤을 지새우며 계엄군을 기다렸다. 일부 학생과 시민은 YMCA에 잔류했는데, 6∼7명씩을 한 개의 조로 편성하고 조별로 자기소개를 하며 계엄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그러다가 계엄군이 외곽에서 진입한다는 소식을 듣고 20여 명이 계림초등학교 육교 일대로 이동했다. 전남도청 일대에서 진압작전을 전개한 계엄군은 YMCA를 우선적으로 공격했다. 계엄군은 YMCA에서 다수의 시민들을 체포했고, 이들은 전교사 건설공단 등으로 이송되어 가혹한 폭행을 당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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