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오월을 걷자

광주 사적지(29개소)



제12호 계엄군의 주둔지
조선대학교
광주 동구 필문대로309

 조선대학교에도 5월 18일 새벽에 계엄군이 진주했다. 조선대학교에 들어온 계엄군은 제7공수여단 제35대대였다. 학교를 수색한 계엄군은 수십 명의 학생들을 체포하여 체육관 등에 감금했고, 일부는 제31사단 헌병대로 이첩했다. 정문에는 계엄군이 경비를 섰으며, 전남대학교 정문 앞과 같이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5월 18일 오후 4시경 제35대대는 도청 방면에서 금남로와 충장로로 내려가며 진압작전을 전개했다. 제35대대는 다수의 학생과 시민을 조선대학교로 연행ㆍ감금했는데, 목불인견의 폭력이 자행되었음은 차마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조선대학교에 주둔한 계엄군은 5월 18일 밤부터 대거 증가했다. 서울 동국대학교 배치되었던 제11공수여단 병력이 항공편 등으로 광주에 증파된 것이다. 제11공수여단의 주력은 조선대학교에 배치되었다. 그리하여 조선대학교에는 제7공수여단과 제11공수여단 등 1,000여명 이상의 계엄군으로 북적였다. 계엄군은 3일 동안 광주 도심에서 진압작전을 폈다. 제11공수여단이 증파되면서 계엄군의 진압작전 범위는 광주 전역으로 확대되었고, 더욱 무자비해졌다. 공수여단 간부들은 보다 강경하게 진압하지 않는다며 조선대학교 운동장에서 부대원을 구타하고 얼차려를 가했다. 20일 자정을 넘어서는 시민들이 조선대학교 정문에서 계엄군과 대치하고, 차량을 이용해 저지선 돌파를 시도했다.


 막대한 인적ㆍ물적 피해를 유발하고, 국군에 대한 시민의 존경심을 바닥으로 추락시킨 계엄군은 21일 밤 광주 외곽으로 철수했다. 제3공수여단과 제11공수여단은 소태동을 넘어 주남마을 인근에 주둔하며 화순방면의 진출입을 통제했다. 제11공수여단은 5월 24일 광주 재진입작전을 위해 광주공항 방면으로 이동하다 효덕초등학교 삼거리에서 매복 중인 광주보병학교 교도대의 공격을 받았다.


계엄군이 조선대학교에 다시 등장한 것은 27일 새벽이었다. 77명의 공수부대원이 특공대로 편성되었는데, 이들이 도청 후문을 맡아 진압작전을 수행했다. 계엄군이 조선대학교에 주둔했기 때문에, 부상자들이 조선대학교 병원에서 치료받기 어려웠다. 광주 시내의 병원들이 갑작스럽게 밀려든 환자들로 혼잡스러웠던 것과 대조적으로 조선대학교 병원이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것은 바로 계엄군이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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